릴리함메르에서의 NEWDAY      

                       

   7/2 오전,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에 도달했습니다. 경유를 해서 목적지에 가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고 노르웨이라는 나라를 잘 몰라서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릴레함메르가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곳이라 옛날 한국 코미디 소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만, 저는 릴레함메르에 가서야 그 곳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음을 알았을 정도로 노르웨이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3명의 학우들과 함께 순조롭게 경유지에 도착하여 구경을 다니다가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노르웨이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바로 릴레함메르 역으로 갔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고 신기했던, 새로운 상황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릴레함메르 역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으면서 높은 물가에 한번 놀라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서울도 아리수를 마실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릴레함메르 사람들은 물이 깨끗하다고 자부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역을 나서서 본 릴레함메르는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난센 아카데미를 찾아 길을 내려가는데 마주친 한 백인이 선글라스를 내리고 저희를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NEWDAY 프로그램 참가자들이냐고 먼저 물어왔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그렇다고 했고 그녀는 자신도 NEWDAY 참가자라며 난센 아카데미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오로라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친구와 떠나기 전날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을 같이 나눠 먹기도 하고 친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인도로 우리는 무사히 난센 아카데미에 도착했고 난센 아카데미의 교장선생님과 관계자분들께서는 상냥하게 저희를 맞이해주셨습니다. 숙소는 조금 더 기다려야 열린다기에 짐을 잠시 교실에 두고 오로라가 릴레함메르 시내를 앞장서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시내 상점에서 노르웨이 정통 의상도 구경하고 슈퍼마켓에 들러 오로라가 추천하는 음료수를 사 마시기도 했습니다. 가벼운 비가 내렸고 우리는 카페에 앉아 정식으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르웨이 친구 오로라는 파견된 우리가 우리의 한국 이름과 영어 이름을 따로 소개하면서 편한 대로 부르라는 말을 가만히 듣다가 왜 영어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외국 친구들이 발음하기 어려울 것 같아 부르기 쉽게 바꾸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저는 그 물음에 당황했습니다. 오로라는 자신의 본명으로 불려야한다며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형성해왔던 관념에 자극을 받은 첫 날이었습니다.
   다음 날, 정규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아침을 먹고 나서는 뉴데이 프로그램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릴레함메르를 구경했습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자연 경관과 맑은 공기와 하늘이 좋았습니다. 난센 아카데미에 돌아와 뉴데이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고 평화에 관한 강연을 들은 후 점심을 먹고 난센이라는 사람과 그 유산에 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 후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진 후 ‘Maihaugen’에 방문하는 야외 활동에 참가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노르웨이 전통 스프를 먹으며 노르웨이 전통 악기 연주를 들었습니다. 처음 맛본 음식도 신기했지만 노르웨이 전통 악기가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악기를 입에 넣어 튕겨 연주하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가이드의 노래를 듣기도 하고 옛 노르웨이 부농 가옥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난센 아카데미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었고 Carol Kvande가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불러주었습니다. 두 번째 날 아침에는 중국 친구가 준 사탕을 입에 물고 강연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9시에 동서양의 철학에 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난센 아카데미로 와주신 강연자 분들은 각자의 풍부한 지식을 강연해주셨는데 나중에 난센 아카데미에 강연을 하러 와주시는 교수님들이 강연료를 받지 않으신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 강연을 맡아주셨던 최종건 교수님께서는 동아시아 정세를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게 풀어주셔서 동서를 막론한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후 패널 디베이트가 이어졌고 점심을 먹은 후는 프로그램 참가자 두 명씩 짝을 지어 릴레함메르의 하늘 혹은 땅 사진을 찍어오는 야외활동을 했습니다. 난센 아카데미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최대한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매칭했던 것입니다. 야외 활동을 마치고 자유시간에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릴레함메르의 아름다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함께 건너면서 경치를 즐겼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는 최종건 교수님과 릴레함메르의 경치가 좋은 식당에서 한국인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뉴데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국인은 총 일곱 명이었는데, 파견 학생 다섯 명을 제하고 자교에서 온 학생 한 분과 미국 대학에 다니시는 한 분이었습니다. 뉴데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인연들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셋째 날에는 춘롱 교수님이 노르웨이인의 관점과 중국의 관계에 관해 강연하신 후 그룹을 열 명 내외로 나누어 세계의 시급한 이슈에 관한 토의를 하고 토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날은 릴레함메르에서 큰 장터가 열리는 날이어서 당일 프로그램이 끝나고는 시내를 둘러보며 길거리 악사들을 구경하고 노르웨이 마켓에 들려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하고 상점에서 서프라이즈 팩을 구입하는 등 노르웨이인의 삶을 체험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포퓰리즘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에 암벽등반 체험을 하러 갔습니다. 해당 체험이 끝나고는 다시 난센 아카데미에서 세계 정치에 관한 패널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일요일에는 모든 참가자들이 야외활동을 함께 나갔습니다. 강가에는 수상스포츠를 하는 노르웨이인들이 꽤 있었습니다. 야외활동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른 길로 돌아가시려는 강연자분을 따라 가다가 거칠고 위험한 길을 맞닥뜨렸지만 무사히 그 길을 통과하고 나서는 릴레함메르를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야외 활동을 마친 후에는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친구들이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영화를 찾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을 보고 저희는 당시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던 옥자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옥자’를 설명하며, 노르웨이 영화를 찾기 어렵다면 옥자를 추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희는 ‘옥자’를 보았습니다. 노르웨이에서 한국 영화를, 그것도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봤던 것은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 강의를 듣고 환경문제에 관한 그룹 토의 및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패널 토론이 끝난 후에는 노르웨이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Bjørnstjerne Bjørnson의 생가로 향했습니다. 예쁜 그림이 걸린 벽과 따듯한 차와 잼이 올려진 팬케이크도 인상깊은 경험이었지만, 음식을 나누어 주는 데에서 보다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앉았던 테이블에서는 레이디 퍼스트라며 여성에게 먼저 나온 음식을 놓았습니다. 제가 있던 테이블의 가장 연장자이던 가일에게 나온 음식을 먼저 드리려하자 사양하시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어르신을 공경하는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 존재하는 반말과 존댓말의 개념에 관해 노르웨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기존에 형성해왔던 사고방식의 틀이 협소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날씨는 해가 뜨겁고 공기가 건조해, 햇볕에서는 덥고 그늘에서는 시원했습니다. 처음 릴레함메르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되어도 밝은 것이 낯설었습니다만 이내 익숙해져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밤이 어두운 것이 낯설어 웃음이 났습니다. 노르웨이 친구 오로라는 여름에는 해가 지는 날이 없고 겨울에는 해가 뜨는 날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유럽 친구들은 동아시아 삼국의 관계를 잘 몰랐고 한중일 친구들은 유럽의 난민 문제를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역시도 한국에 있을 때 난민에 관한 기사는 뉴스를 통해 봤을 뿐 잘 알고 있지 못했는데 뉴데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유럽 친구들에게 직접 난민에 관한 설명을 듣고 오슬로 역에서는 실제 난민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난민 문제가 그들에게 해결이 시급한 문제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 전문가 가일 교수님과 한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총장님과 저녁식사를 한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너무나 멀리 있어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공간의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어 대화를 하고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아카데미에 직접 기숙하고 다양한 교수님께 배우면서 그냥 여행으로는 알 수 없었을 그들의 삶을 피부로 체험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모두에게 한국과 관련된 무언가라도 주고 싶었는데 미처 출국할 때에는 생각지 못해 준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NEWDAY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열려서 유럽 친구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복잡한 서울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뉴데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 밤, 릴레함메르에 더 있고 싶다던 저에게 오로라가 릴레함메르에 계속 있다보면 지루하다고 했듯이, 우리에게는 일상이어서 갑갑한 서울이 노르웨이 친구들에게는 다양한 음식과 선택지로 가득찬 흥미로운 공간으로 기억될 것 같기도 합니다.
   후각영역과 기억영역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데 아쉽게도 저는 시각과 미각에 의존하느라 후각에 신경을 못 썼습니다. 그저 공기가 아주 맑고 맑은 곳, 그래서 계속 숨 쉬고 싶었던 곳, 무취여서 더 꿈같은 곳. 릴레함메르에서의 프로그램 덕분에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